#AI 시대에 발주 담당자의 역할은 사라질까? 재고, 결품, 폐기, 수요예측 관점에서 발주 업무의 미래와 유통 실무자의 경쟁력을 분석합니다.
유통회사에서 발주는 자주 조용한 업무로 취급된다.
화려한 마케팅도 아니고, 눈에 띄는 영업도 아니다. 소비자는 누가 발주했는지 알지 못하고, 사내에서도 성과가 드러나기 어렵다. 하지만 현장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발주가 흔들리면 회사 전체가 흔들린다는 사실을.
상품이 너무 많이 들어오면 재고가 된다.
재고는 단순히 창고에 놓인 박스가 아니다. 현금이 멈춘 상태다. 공간을 차지하고, 할인 압박을 만들고, 때로는 폐기로 끝난다. 반대로 상품이 부족하면 결품이 된다. 고객은 한 번 실망하면 다음번엔 다른 플랫폼으로 간다. 숫자로는 한 건의 품절이지만, 실제로는 고객 신뢰의 손실이다.
그래서 좋은 발주는 늘 어려운 줄타기였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맞춰야 한다.

과거 이 영역은 경험 많은 담당자의 감각에 의존했다.
비 오는 날은 이런 상품이 나간다. 명절 전 주말은 평소보다 강하다. 월급날 직후 특정 카테고리가 움직인다. 특정 점포는 같은 상권이라도 고객층이 다르다.
이런 감은 단순 직감이 아니다. 오랜 실패와 수정 끝에 생긴 현장의 데이터였다. 다만 머릿속에만 저장되어 있었을 뿐이다.
이제 AI는 그 암묵지를 숫자로 바꾸기 시작했다.
수년치 판매 이력, 날씨, 기온, 강수량, 지역 행사, 검색량, 경쟁사 가격, 프로모션 일정, 요일 효과까지 동시에 계산한다. 사람은 한 번에 몇 개 변수만 볼 수 있지만, 시스템은 수백 개를 함께 본다.
예를 들어 폭염 예보가 있는 주말이라면 생수와 아이스크림, 냉면류 수요를 미리 올릴 수 있다. 비 오는 날이면 즉석식품이나 배달 대체 수요가 강해질 수 있다. 연휴 직후에는 신선식품보다 간편식이 먼저 반응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질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발주 담당자는 필요 없어지는가.
나는 오히려 반대로 본다. 단순 입력자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좋은 발주자의 가치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AI는 계산은 잘하지만 현실은 늘 예외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공급사가 갑자기 납기를 못 맞춘다. 예상치 못한 방송 노출로 주문이 급증한다. 센터 작업량이 포화 상태다. 점포 리뉴얼로 일시적 수요 왜곡이 생긴다. 데이터상 정상인데 현장은 이미 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런 순간엔 사람이 필요하다.
숫자를 믿되 맹신하지 않는 사람, 시스템이 제안한 값을 이해하고 수정할 줄 아는 사람, 재고와 매출과 운영 부담을 동시에 보는 사람이 필요하다. 앞으로 발주 업무는 손으로 수량을 넣는 일에서 운영 판단 업무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무엇을 자동화할지, 어떤 카테고리는 사람 승인 절차를 둘지, 안전재고 기준을 어디까지 둘지, 결품보다 폐기가 더 위험한 상품은 무엇인지. 이건 단순 오퍼레이터가 아니라 운영 전략가의 영역이다.
유통회사에서 종종 이런 오해가 있다. 발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회사의 현금흐름, 고객 만족, 물류 효율, 폐기율이 동시에 걸린 고난도 업무다. 눈에 띄지 않을 뿐, 회사의 심장에 가깝다.
AI 시대가 오면 감은 사라질까.
아니다. 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설명되지 않던 감이 데이터로 검증될 뿐이다. 그리고 검증된 감각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더 강해진다. 앞으로 유통회사가 원하는 사람은 손이 빠른 발주 담당자가 아닐 수 있다. 시스템을 이해하고, 숫자를 읽고, 현장을 알고, 예외 상황에서 회사를 지킬 사람이다.
발주의 미래는 사람이 없어지는 미래라기 보다는 감에만 의존하던 시대가 끝난다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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