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버터를 처음 제대로 먹어본 날을 기억한다.
따뜻한 빵 위에 올려진 작은 버터 조각이 천천히 녹아내렸고, 생각보다 훨씬 깊은 향이 났다. 단순히 우유의 맛이라기보다, 조금 더 농축되고 묵직한 풍미에 가까웠다.
그 순간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어떤 지역은 올리브오일보다 버터를 더 사랑하게 되었을까.
지금은 너무 익숙한 음식이지만, 사실 버터는 오랫동안 유럽 안에서도 꽤 다른 취급을 받던 음식이었다.
특히 고대 로마 시대에는 더 그랬다.
당시 로마는 대표적인 올리브오일 문화권이었다. 지중해의 따뜻한 기후에서는 올리브가 잘 자랐고, 사람들은 오일을 음식뿐 아니라 화장품과 약, 조명 연료로까지 사용했다.

반면 버터는 주로 북쪽 지역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로마인들은 버터를 문명의 음식이라기보다, 추운 북유럽과 게르만 지역 사람들이 먹는 다소 거친 음식처럼 바라보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기록에서는 버터를 약이나 피부에 바르는 용도로 언급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꽤 흥미로운 장면이다.
오늘날 유럽의 고급 레스토랑과 베이커리에서 버터는 가장 섬세한 풍미의 재료처럼 사용된다. 하지만 시작은 오히려 ‘북쪽 사람들의 음식’에 가까웠던 셈이다.
결국 이 차이는 기후에서 시작되었다.
지중해는 올리브가 자라는 땅이었다. 따뜻하고 건조한 환경에서는 올리브오일 문화가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하지만 북유럽은 달랐다.
추운 기후에서는 올리브가 자라기 어렵다. 대신 사람들은 소를 키우고 우유를 저장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오래 보관하기 위해 우유를 가공하면서 버터 문화가 성장하게 된다.
생존 방식이 결국 음식 문화를 만든 셈이다.
흥미로운 건 시간이 지나며 이 버터가 단순한 저장 식품을 넘어 ‘풍미의 음식’으로 발전했다는 점이다.
특히 프랑스와 북유럽 지역에서는 버터를 활용한 요리가 점점 정교해졌다. 빵과 페이스트리, 소스 문화가 발전하며 버터는 단순 지방이 아니라 음식의 향과 질감을 설계하는 재료가 된다.
우리가 흔히 “프랑스 음식의 깊은 맛”이라고 느끼는 것들 상당수도 결국 버터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 프랑스 요리를 대중화한 줄리아 차일드 역시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있다.
“프랑스 음식은 버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꽤 상징적인 문장이다.
현대의 음식은 점점 가볍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저지방과 효율, 칼로리 중심의 기준 속에서 버터는 한때 지나치게 무거운 음식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버터의 향을 기억한다.
따뜻한 빵 위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는 풍미, 입안에 오래 남는 고소함, 음식 전체의 결을 바꾸는 묵직한 향.
그건 단순히 지방의 맛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유럽 사람들이 발전시켜온 풍미의 문화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음식은 언제나 지역의 기후와 사람들의 생존 방식 위에서 만들어졌다.
올리브오일이 태양의 음식이었다면, 버터는 아마 추운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낸 저장의 풍미였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그 풍미를 다시 천천히 기억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장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버터이야기 3. 전쟁은 왜 마가린을 만들었을까? (0) | 2026.05.24 |
|---|---|
| 버터이야기 2. 프랑스는 어떻게 버터의 나라가 되었을까 (1) | 2026.05.23 |
| 발사믹 식초 이야기 3. 좋은 발사믹은 소스가 아니라 취향이다 (0) | 2026.05.20 |
| 발사믹 식초 이야기 2. 3그레이프? 5씰? 발사믹 라벨 읽는 법 (0) | 2026.05.19 |
| 발사믹 식초 이야기 1. 발사믹 식초는 왜 이렇게 비쌀까? (0) | 2026.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