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

나는 매일 뛰는 사람|운동이 습관이 되면 정체성이 바뀐다

rememberwaru 2026. 8. 2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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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누군가 내게 무슨 운동을 하느냐고 물으면 별 고민 없이 말했다.

“수영해요.”

수영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수영이 내 생활의 일부였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수영장에 갔다.
수영 가방을 챙기고, 수경을 쓰고, 물에 들어갔다.

오늘 수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매번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냥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수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수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별것 아닌 차이처럼 보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꽤 큰 차이다.

 

운동을 하는 것과 운동하는 사람은 조금 달랐다

“나는 수영을 한다.”

이 문장에서 수영은 행동이다.

오늘 할 수도 있고 내일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수영하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면 조금 달라진다.

수영이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특징이 된다.

운동을 몇 년 동안 계속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오는 것 같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 시작한다.

운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간다.

그러다가 반복한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그냥 간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면 운동을 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하루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수영을 하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

 

본문 내 이미지는 ChatGPT, Gemini 등 AI 도구로 직접 생성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루틴이 멈췄다

문제는 수영장 공사였다.

매일 하던 운동을 한동안 할 수 없게 됐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쉬면 되지.

그런데 마음 한쪽에서는 조금 걱정이 됐다.

운동은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한 번 만들어놓은 습관이 끊어지는 것도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 정도 쉬고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만 그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렵게 만들어놓은 ‘운동하는 생활’ 자체가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러너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마라톤에 나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운동을 계속하고 싶었다.

3km 정도만 뛰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몇 번은 분명히 그랬다.

‘오늘 달리러 가야지.’

운동복을 입고 신발을 신고 나가는 것에도 작은 결심이 필요했다.

3km를 뛰고 들어오면

‘오늘 운동했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영은 익숙했지만 달리기는 아직 별도의 일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3km가 반복됐다.

어떤 날은 3.1km.

어떤 날은 3.2km.

조금 느리게 달린 날도 있었고 몸이 가벼운 날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6km도 달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변화는 거리가 아니었다.

달리러 나가는 일이 조금씩 특별하지 않아졌다는 것.

 

습관이 되기 시작하면 고민이 줄어든다

처음에는 매번 생각했다.

오늘 뛸까.

조금 피곤한데.

내일 뛰면 안 될까.

날씨가 더운데.

이런 작은 협상이 계속됐다.

그런데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니 고민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었다.

일어나서 운동복을 입고,

워치를 차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오늘 3km를 뛸지 5km를 뛸지는 나간 다음에 생각해도 된다.

빠르게 뛰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냥 편하게 달리고 돌아오면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재미있는 변화가 생겼다.

‘오늘 달려야 하는데’가 아니라 ‘오늘 달리는 날인데’가 됐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원래 하는 일이 되어가는 것이다.

 

나는 매일 뛰는 사람

요즘 러닝 기록을 남기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이제 달리기를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뛰는 사람일까.

아직 대단한 거리를 달리는 것도 아니다.

페이스가 빠른 것도 아니다.

누군가 나를 러너라고 부르면 조금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꼭 10km를 달려야 러너가 되는 것일까.

5분 페이스로 뛰어야 달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수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수영선수여서 수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잘해서도 아니었다.

계속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달리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3km든 5km든 상관없다.

빠르든 느리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아침에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달린다.

그 행동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이렇게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뛰는 사람이다.

 

본문 내 이미지는 ChatGPT, Gemini 등 AI 도구로 직접 생성한 것입니다.

정체성이 행동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처음에는 행동이 정체성을 만든다.

몇 번 달리고,

또 달리고,

계속 달리다 보면

‘나는 달리는 사람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반대 방향으로도 움직인다.

정체성이 행동을 만든다.

‘나는 운동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아침에 뛰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가기 싫은 날에도 운동화를 신을 이유가 하나 생긴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오늘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하지 않을 이유를 찾게 된다.

하지만 ‘나는 원래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오늘 운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습관이 정체성을 만들고, 다시 그 정체성이 습관을 지켜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매일 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매일’이라는 말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정말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달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가 오면 쉴 수도 있다.

몸이 좋지 않으면 쉬어야 한다.

일정 때문에 못 뛰는 날도 당연히 생긴다.

하루를 쉬었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달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수영을 하루 쉬었다고 수영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매일 뛰는 사람’은 매일 반드시 달리는 사람이 아니다.

달리기가 생활 속에 있는 사람이다.

쉬더라도 다시 운동화를 신는 사람.

며칠 운동하지 못했다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

나는 그런 의미에서 매일 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매일 수영하는 사람, 그리고 나는 매일 뛰는 사람

수영을 하면서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몸은 꾸준함에 꽤 정직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힘들었던 것이 반복하면 조금씩 편해진다.

달리기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3km가 길었다.

그러다 익숙해졌고 어느 날 더 멀리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몸 밖에서 일어났다.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예전에는 운동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수영을 계속하면서 수영하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지금 달리기를 계속하면서 또 하나의 문장이 생기고 있다.

 

나는 매일 수영하는 사람.

그리고,

나는 매일 뛰는 사람.

 

아직 얼마나 오래 달리게 될지는 모르겠다.

얼마나 빨라질지도 모르겠다.

그건 지금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일 아침에도 운동화를 신고 나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결국 습관이란 어떤 행동을 계속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요즘 나는 그 변화를 꽤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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