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

벽을 나누지 않는 도시 — 베트남 맞벽 건축의 철학

rememberwaru 2025. 10. 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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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집이 좁고 길게 지어진 이유를 이해하고 나면,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다. 거리마다 끝없이 이어진 건물의 행렬, 그리고 그 사이에 단 한 줄의 틈도 보이지 않는 벽들이다. 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건물처럼 서로 기대어 서 있는 듯하다.

 

호치민의 골목을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곳의 건물들은 왜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을까?’

 

그 답은 단순한 건축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이 도시가 서로의 벽을 나누며 살아온 시간의 방식에 있다.

벽은 본래 경계의 상징이지만, 베트남에서는 경계가 곧 연결이다. 이웃의 벽에 등을 기대고, 옆집의 그림자 속에서 쉼을 얻는다. 한 사람의 벽이 다른 사람의 지붕이 되고, 한 집의 구조가 옆집의 뼈대를 이룬다. 이처럼 베트남의 맞벽 건축은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자, 도시적 공존의 은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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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시에서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여백’이 미학이 된다면, 베트남의 도시에서는 그 여백을 없애는 것이 미학이 된다.
비워서 숨 쉬는 공간이 아니라, 붙어서 따뜻한 공간. 서로의 체온이 벽을 타고 전해지는, 인간적인 도시의 형태다.

 

이 맞벽 건축은 지진보다는 기후와 사회적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베트남은 지진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큰 지진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건물들은 독립된 내진 구조보다, 옆집과 벽을 맞대는 방식을 택한다. 이는 단순한 설계의 편의가 아니라, 열대의 햇살과 습기를 이겨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구조는 약한 진동에는 강하다.
건물들이 서로의 하중을 나누어 지탱하기 때문이다.

 

Photo by haidangnb992 on Pixabay


하지만 큰 지진이 발생하면, 맞벽 건물은 위험해진다. 한쪽이 무너지면 옆집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지진이 잦은 나라에서 건물 간 일정한 이격 거리를 두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건축은 그 여백 속에서 안전을, 베트남의 건축은 그 밀착 속에서 관계를 배운다. 하나는 벽을 비워서 견디고, 다른 하나는 벽을 붙여서 버틴다. 그러나 두 도시는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선다.

 

우리는 벽을 세우며 살아야 할까, 아니면 벽을 나누며 살아야 할까. 무너질까 봐 거리를 두고, 외로울까 봐 벽을 맞대는 인간의 본능 속에서 건축은 도시의 철학이 되고, 벽은 사람의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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