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

베트남에는 왜 ‘추석 연휴’가 없을까?

rememberwaru 2025. 10. 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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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추석 연휴를 맞아 베트남에 사는 지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온 나라가 들썩이며 귀향길에 오르는 시기였기에, 비행기 안에서도 ‘명절 기분’이 자연스럽게 묻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베트남 현지에 도착해보니, 거리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게도 그대로 열려 있었고, 사람들은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지인이 무심하게 말했다.
 

“여긴 추석이 없어요. 삼모작이라서요.”

 
처음엔 그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추석’이라는 말은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문화권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들어본 적이 있었고, ‘중추절(中秋節)’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도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모작이라 추석이 없다’는 말은, 문화의 차이를 농업과 기후로 설명하는 듯해서 꽤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래서 이후 조금 더 깊이 조사해보니, 단순한 인상이 아니라 역사적·기후적 맥락이 분명한 문화 차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국의 전통 농경은 벼농사 1모작 중심이었다. 봄에 모내기를 하고 여름에 벼를 기른 뒤, 가을에 한 번 크게 수확하는 방식이다. 음력 8월 15일, 즉 가을의 한가운데는 1년 농사의 결실이 모이는 절정의 시기였다. 그래서 추석(秋夕)은 단순한 명절이 아니라, 1년의 수확에 감사하고, 가족·마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절기이자 축제로 자리 잡았다. 
 

본문 내 이미지는 ChatGPT · DALL·E 등 AI 도구로 직접 생성한 것입니다.

 
이 시기에는 곡식과 과일이 풍성하게 익어 송편을 빚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온 가족이 고향에 모였다. 추석은 농업 사이클의 중심이었고, 명절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대이동과 공동체 행위를 동반했다. 지금도 고속도로 정체와 귀향 뉴스가 매년 되풀이되는 이유도, 뿌리를 따져보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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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베트남은 전혀 다른 농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후가 열대·아열대에 속하고 연중 기온이 높으며, 관개 기술도 발달해 있어 벼농사를 연 2~3회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남부 메콩델타 지역은 삼모작(一年三作)이 가능하다.
 

  • 12월~4월 : 겨울–봄 작기
  • 5월~8월 : 여름–가을 작기
  • 9월~12월 : 가을–겨울 작기

즉, 한국처럼 ‘봄에 모내기 → 가을에 수확’이라는 일제 사이클이 아니라, 지역과 시기에 따라 파종과 수확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일부 지역은 모내기라는 개념조차 한국식과 달라, 따로 정해진 시기가 아니라 논마다, 마을마다 수시로 심고 거둔다. 이런 환경에서는 ‘가을 한 번의 대수확’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특정 시기에 추수를 기념하는 명절이 사회 전반에 공통적으로 형성되기도 어렵다.
 
물론 베트남에도 ‘추석’에 해당하는 Tết Trung Thu(중추절)이 있다. 하지만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중추절은 주로 어린이를 위한 등불놀이, 사자춤, 과자 나누기 중심의 문화 행사로, 농업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거리에는 등불을 든 아이들이 모이고, 마을마다 축제가 열리긴 하지만, 국가적 연휴도 아니고, 귀향이나 제사를 지내는 문화도 없다. 농업 절기보다는 문화·교육적 행사에 가깝다.
 

본문 내 이미지는 ChatGPT · DALL·E 등 AI 도구로 직접 생성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차이라기보다, 농업 주기가 사회 전체의 ‘공동 절기’를 만들어낼 만큼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 해에 여러 번 수확이 가능하다면, 어느 특정 시점이 ‘특별한 수확의 절정’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베트남은 설날(Tết Nguyên Đán)이 한국 못지않게 크다. 음력 1월에 해당하는 설에는 가족들이 모두 귀향하고, 가게도 며칠간 문을 닫으며, 국가 전체가 명절 분위기에 잠긴다. 하지만 추석은 다르다. 법정 공휴일도 아니고, 학교와 회사도 정상 운영한다. 한국에서 추석이 ‘설에 버금가는 명절’이라면, 베트남에서는 ‘큰 축제 시즌 중 하나’에 불과한 셈이다.
 

구분 한국 베트남
기후 온대, 사계절 열대·아열대, 우기·건기 중심
농업 1모작 (가을 대수확 중심) 2~3모작, 연중 수확
추수 시점 가을에 집중 지역별·시기별 분산
추석의 의미 수확 + 제사 + 가족 모임 어린이 축제, 문화행사
연휴 국가 최대 연휴 중 하나 없음

 
이 차이는 단순한 문화 차이가 아니라, 자연환경이 사회 구조와 명절의 형식을 결정짓는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추석은 ‘농사 절기 → 가족 제사 → 사회적 명절’로 발전했지만, 베트남은 농업 주기가 그렇게 강력한 리듬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물론 베트남에서도 중추절에 아이들이 등불을 들고 달을 바라보는 모습은 한국의 보름달 감상과 묘하게 닮아 있다. 달은 여전히 풍요와 단란의 상징이며, 지역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사람들이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공동체를 나누는 시간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한국처럼 추석이 국가의 이동과 소비, 가족 의례가 집중되는 사회적 대사건으로 발전한 것은, 결국 농업, 기후 조건이 만든 문화적 토양의 차이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인이 말했던 “여긴 추석이 없어요. 삼모작이라서요.”라는 짧은 한마디는, 단순한 인상이 아니라 기후·농업·사회 구조가 문화를 어떻게 빚어내는지 보여주는 정확한 통찰이었다. 추석이라는 명절은 달력에 있는 날짜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가 어떤 리듬으로 살아왔는가, 언제 수확하고, 어떻게 함께 살아왔는가가 반영된 문화의 결정체다.
 
베트남의 추석이 ‘없다’는 건 곧 한국의 추석이 특별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농업의 계절성이 뚜렷한 사회에서만 가능한, 가을의 풍요와 가족 공동체가 한데 어우러진 독특한 명절 — 그것이 바로 한국의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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